단편소설/비틀어진 이야기6 비틀어진 이야기 6 - 커브의 감각 또다시 3회 강판. 전혀 선배답지 않은 모습이다. 플레이오프는 물론 코리안시리즈 우승까지 넘보는 팀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토종 선발인 선배를 후반기 시작과 함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왔다. 나는 이런 팀의 즉시 전력감이랄 수는 없었지만 화제의 트레이드에 자잘한 균형추 역할로 함께 온 상황. 존경하는 선배와의 동행에 위안을 삼으면서 그만큼 선배를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 이후 거두고 있는 선배의 성적은 유의찬이라는 이름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이적 후 5경기 1승 3패 방어율 5.75. 전반기까지 같이 있었던 팀에서는 이미 7승을 기록했던 선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은 담담하게 상황을 극복하려는 모습이다. 강판되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선배의 표정이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몇.. 2025. 6. 6. 비틀어진 이야기 5 - 올리비아 채널 "피고 측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주심판사는 피고인 측을 향해 눈길을 보내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만큼 감정 따윈 묻지 않은 표정이다. 판결을 내리기 전 마지막 단계. 배심원들을 포함한 법정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판사의 발언을 따라 피고와 변호사가 앉아 있는 곳으로 향한다. 법원 방청석에 앉아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열심히 메모를 겸하고 있다. 기자들이다. 20년 가까이 유명세를 이어온 인플루언서이자 유튜버 부부의 사망. 살해를 통한 죽음을 일으킨 범인은 부부가 금지옥엽으로 키운 외동딸. 이 사실만으로도 바깥의 이목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오히려 더 많은 기자들이 필요했을만한 사건이다. 판사의 제안에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피고가 변호사의 팔 한쪽을 살며시 잡는다. 살.. 2025. 6. 4. 비틀어진 이야기 4 - 오래된 병장 자대에 온 지 3주 차. 야간 경계근무에 투입된지는 이제 갓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다. 자다 일어나야 하는 귀찮음은 상상이상. 하지만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환경과 임무에 대한 긴장감이 그보다 무거운 기분이란 게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은 자정에 투입되는 근무. 두 시간을 채우지 못한 잠을 쫓으며 다시 전투복을 챙겨 입는다. "준비 다 됐으면 나와" 생활관 문이 열리고 낮은 목소리의 지시가 나를 향한다. 이은재 병장. 나와 함께 근무에 나갈 사수다. 보통의 경우 당직 근무에 들어갈 짬이지만 군번이 꼬여서 여전히 경계근무에 투입되고 있는 고참. 그렇지만 군에 말뚝 박으라는 제안은 진작부터 받고 있던, 간부들을 포함한 중대원 모두가 인정하는 '에이스'. 자대 생활이 얼마 안 된 나조차 이미 듣고 보.. 2025. 6. 2. 비틀어진 이야기 3 - 프라하에서 생긴 일 서른둘이란 나이가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건만 체력은 훨씬 하찮아졌나 보다. 유럽 땅을 밟은지 5일이 지났으니 시차 적응은 핑계가 될 수 없고 매 끼니 다 챙겨 먹고 있으니 밥심도 문제가 아니다. 너무 일찍 나왔던 건가? 그렇다기엔 오후 2시 즈음이면 쉬고 싶어지는 규칙성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오늘도 숙소에서 잠시 쉬고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프라하 구(舊) 시가지 정류장에서 기다린 지 5분 정도 됐을까? 숙소에서 나올 때 탔던 트램과 같은 번호의 트램이 반갑게 도착했다. 한낮이라 그런지 비교적 한산했고 비어있는 자리도 드문드문 보인다. 피곤한 몸이지만 그냥 서서 가기로 결심했다. 탑승하는 동안 몇 개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지레 오해해야 할 눈빛들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그냥.. 2025. 5. 31. 비틀어진 이야기 2 - 앱 '클래스(Class)' "클래스??" 수빈은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며 맞은편에 앉아있는 상대에게 반문한다. "응. 앱 이름부터가 '클래스(Class)'야. 뭔가 느낌이 딱 오지 않아??" 성연은 그런 수빈을 보며 조금 더 소개의 열정을 높인다. "그러니까 언니가 지금 만나는 남자분이랑 그 앱을 통해 매칭됐다고? 그리고 그전 남자친구도??" "그렇다니까~ 그런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예사롭지가 않아. 기억해? 지금이야 헤어지긴 했지만 직전 남자친구가 나에 대해서 정말 많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준다고 했었던 거?" "그걸 어떻게 잊겠어~ 어쩜 취향까지 너무 잘 겹친다면서 그때 언니는 당장 다음 달에라도 결혼할 것처럼 얘기했었는데" 수빈은 미소와 함께 짧게 내미는 혓바닥을 통한 지적으로 성연에게 호응과 호흡을 부여한다. "그래 맞아 .. 2025. 5. 31. 비틀어진 이야기 1 - 버리고 오는 길 "506호 아저씨는 관리실 통해서 항의를 넣든 반상회에 안건으로 올리든 해야겠어 진짜~" 조수석에 앉아있는 명신이 짜증을 가득 묻힌 푸념을 내놓는다. "506호? 그 키 작고 까무잡잡한 남자?" 운전하는 동열은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반문하며 반응했다. "응 맞아. 볼 때마다 꾀죄죄하게 다니는 그 사람" "근데 그 사람이 왜?" "아니 맨날 새벽에 아파트 입구 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잖아. 그것도 한 번에 하나도 아니고 몇 개피씩. 하필 은수가 학교 일찍 가는 날마다 마주치게 된다는데 담배연기 때문에 너무 짜증 나고 불편하대" "그래 은수야?" 동열은 룸미러로 뒤에 앉아있는 딸을 보며 물었다. "어?? 뭐??.. 어! 맞아. 담배 피우고 있어서 짜증 날 때도 있고.. 꼭 연기는 나한테만 와.. 그리고 가.. 2025. 5. 3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