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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소설5

비틀어진 이야기 9 - 계획에 없던 휴가 피곤하다. 무디고 무거운듯한 몸과 풀리지 않는 피로, 몰아친 감정의 소모. 또 다른 긴장감. 오랜 친구의 삼일장을 내내 지키고 다음날 바로 출근한 오늘, 확실히 만만치 않다. 장례식을 견디는데 소모되는 감정과 체력은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넘실거리는 슬픔을 바탕으로 짙은 엄숙함이 감싸고 있는 곳, 흡사 조금은 다른듯한 중력이 느껴지는 곳에서 며칠을 보낸다는 것은 쉬이 익숙해질 수 없는 일이다. 혹여 익숙해질 정도가 된다는 건 그것대로 썩 반갑지 않은 일일 것이고. 어찌 됐든 지상에서의 이별을 마친 이들이 겪는 후유증은 불가피하다. 사무실 직원들은 말과 표정을 통해 나를 향한 위로를 보내왔다. 연차를 사용하며 솔직하게 적었던 사유가 크지 않은 회사에 퍼진 걸까? 경영관리팀장에게는 구두로도 전했던 사연이.. 2025. 6. 13.
비틀어진 이야기 6 - 커브의 감각 또다시 3회 강판. 전혀 선배답지 않은 모습이다. 플레이오프는 물론 코리안시리즈 우승까지 넘보는 팀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토종 선발인 선배를 후반기 시작과 함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왔다. 나는 이런 팀의 즉시 전력감이랄 수는 없었지만 화제의 트레이드에 자잘한 균형추 역할로 함께 온 상황. 존경하는 선배와의 동행에 위안을 삼으면서 그만큼 선배를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트레이드 이후 거두고 있는 선배의 성적은 유의찬이라는 이름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이적 후 5경기 1승 3패 방어율 5.75. 전반기까지 같이 있었던 팀에서는 이미 7승을 기록했던 선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은 담담하게 상황을 극복하려는 모습이다. 강판되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선배의 표정이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몇.. 2025. 6. 6.
비틀어진 이야기 4 - 오래된 병장 자대에 온 지 3주 차. 야간 경계근무에 투입된지는 이제 갓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다. 자다 일어나야 하는 귀찮음은 상상이상. 하지만 아직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환경과 임무에 대한 긴장감이 그보다 무거운 기분이란 게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오늘은 자정에 투입되는 근무. 두 시간을 채우지 못한 잠을 쫓으며 다시 전투복을 챙겨 입는다. "준비 다 됐으면 나와" 생활관 문이 열리고 낮은 목소리의 지시가 나를 향한다. 이은재 병장. 나와 함께 근무에 나갈 사수다. 보통의 경우 당직 근무에 들어갈 짬이지만 군번이 꼬여서 여전히 경계근무에 투입되고 있는 고참. 그렇지만 군에 말뚝 박으라는 제안은 진작부터 받고 있던, 간부들을 포함한 중대원 모두가 인정하는 '에이스'. 자대 생활이 얼마 안 된 나조차 이미 듣고 보.. 2025. 6. 2.
비틀어진 이야기 3 - 프라하에서 생긴 일 서른둘이란 나이가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건만 체력은 훨씬 하찮아졌나 보다. 유럽 땅을 밟은지 5일이 지났으니 시차 적응은 핑계가 될 수 없고 매 끼니 다 챙겨 먹고 있으니 밥심도 문제가 아니다. 너무 일찍 나왔던 건가? 그렇다기엔 오후 2시 즈음이면 쉬고 싶어지는 규칙성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오늘도 숙소에서 잠시 쉬고 나오기로 마음먹었다. 프라하 구(舊) 시가지 정류장에서 기다린 지 5분 정도 됐을까? 숙소에서 나올 때 탔던 트램과 같은 번호의 트램이 반갑게 도착했다. 한낮이라 그런지 비교적 한산했고 비어있는 자리도 드문드문 보인다. 피곤한 몸이지만 그냥 서서 가기로 결심했다. 탑승하는 동안 몇 개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지레 오해해야 할 눈빛들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그냥.. 2025. 5. 31.
비틀어진 이야기 2 - 앱 '클래스(Class)' "클래스??" 수빈은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며 맞은편에 앉아있는 상대에게 반문한다. "응. 앱 이름부터가 '클래스(Class)'야. 뭔가 느낌이 딱 오지 않아??" 성연은 그런 수빈을 보며 조금 더 소개의 열정을 높인다. "그러니까 언니가 지금 만나는 남자분이랑 그 앱을 통해 매칭됐다고? 그리고 그전 남자친구도??" "그렇다니까~ 그런데 정말 신기할 정도로 예사롭지가 않아. 기억해? 지금이야 헤어지긴 했지만 직전 남자친구가 나에 대해서 정말 많이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준다고 했었던 거?" "그걸 어떻게 잊겠어~ 어쩜 취향까지 너무 잘 겹친다면서 그때 언니는 당장 다음 달에라도 결혼할 것처럼 얘기했었는데" 수빈은 미소와 함께 짧게 내미는 혓바닥을 통한 지적으로 성연에게 호응과 호흡을 부여한다. "그래 맞아 .. 2025.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