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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오드아이 체육선생

오드아이 체육선생 23 - 시나리오들

by 서여다 2025. 6. 9.

"아이고 검사님들 오래 기다리셨나?"

룸에 들어서면서 권은혁이 목소리를 살짝 높여 인사를 건넨다. 그러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성 세 명이 일어나며 그를 반긴다.

"아닙니다. 저희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세 명 중 가장 연장자인 김수호 차장검사가 먼저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다. 이어 김수호 검사가 옆쪽에 있는 두 명의 검사들을 소개하자 권은혁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통성명을 한다.

"자 앉지 앉아"

인사를 마치고 권은혁이 착석을 권유하자 다 같이 자리에 앉는다. 권은혁의 뒤를 따라 들어온 조 변호사도 자리를 함께한다.

"최근에 통화는 자주 했지만 식사도 같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가 미안하네 그래. 그래 뭘로 시작하면 되나?"

권은혁이 조 변호사를 보며 묻자 조 변호사가

"들어오면서 주문한 메뉴 시작해 달라고 했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렇구만. 그럼 식사 천천히들 하자고. 김 검사는 요즘 좀 어때?"

권은혁이 김수호에게 가볍게 안부를 묻는다.

"뭐 저희 생활이야 늘 여전하죠. 시간 쪼개고 밤낮 없고. 특히나 용산도 용산이지만 마포나 은평, 서대문구도 관할 지역으로는 만만치 않은 곳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서울에 있다는 거 빼고는 검사들한테 뭐 그다지.. 그나마 다음을 기약하는 우선순위로는 조금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김 검사님은 다음에 영전하시지 않겠습니까?"

옆에 있던 조 변호사가 말을 거든다. 조 변호사는 김수호의 사법고시 2년 후배 기수다.

"에이 요즘은 그런 말 어디 가서 농담으로도 안 합니다. 검사 출신이 VIP가 되시면서 오히려 검찰 승진에 관심이 몰리는 분위기라 설왕설래도 조심하는 판이에요"

응원조의 농담은 조 변호사가 했지만 김수호는 권은혁을 보면서 해명하듯 이야기한다.

"그럼 여기 있는 후배님들도 한창 바쁘시겠구만"

시선을 김수호와 함께 온 두 명의 검사에게 옮기며 권은혁이 말을 건넨다.

"이 친구가 말씀드린 부부장검사고 이 친구는 4학년(검사 8년 차)입니다. 형사부에 있구요"

"조 변호사한테도 중간 중간 이야기 많이 들었네. 지금 서부검찰청에 있는 만큼 실력도 확실한 친구들이라고. 바쁜 와중에 도움까지 부탁하는 입장이라 무척 고맙게 생각하네. 그런데 신 부부장검사는 안면이 좀 낯이 익는 거 같은데.."

"예 선배님. 지난해 동문회에서 인사를 한 번 드렸습니다"

신정수 부부장 검사가 답변한다.

"아 그때 인사했던 그 후배님이셨구만.. 그때도 인상이 좋더니만 능력도 좋으시고 허허"

"옆에 있는 유 검사는 현장 경력을 탄탄하게 쌓고 있는 친구입니다. 아이디어도 좋아서 기획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조 변호사가 신 검사 옆에 있는 유기정 검사에 대한 칭찬을 덧붙인다.

"그렇잖아도 조 변호사가 칭찬을 많이 하길래 누군지 궁금했네. 필드에서 실력을 제대로 키워서 그런지 경력에 비해 사례 경험이나 분석이 좋다고"

"과찬이십니다"

유 검사가 작은 미소와 함께 살짝 고개를 숙이며 겸손함을 보인다.

그 순간 노크와 함께 룸으로 직원이 전채요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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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요리가 진행되면서 술도 몇 잔 돌았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풀리면서 본격적인 '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러면 선배님 공식적인 출마 선언은 언제쯤으로 계획하고 계십니까?"

"12월 둘째 주 정도를 적당하게 보고 있네. 그때 작은 이벤트도 있을 거 같은데 그거랑 겸해서 공식적으로 알리는 방식으로"

김수호의 질문에 권은혁이 답했다.

"작은 이벤트요?"

김수호가 다시 되묻는다.

"조만간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발표하는 우수변호사에 선배님이 뽑히실 예정이고 다음 달에 의미 있는 대법원 승소 판결을 기다리는 게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맞춰 출마 선언을 하시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분위기 조성해 줄 기획 기사도 준비 중이고요"

옆에 있던 조 변호사가 대신 설명한다.

"내가 초선 출마에다가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편이 아니다 보니 출판기념회 같은 기존의 방식을 따를 수는 없지 않겠나. 현역도 아니니 국회에서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시작부터 주목도 좀 높이고 긍정적인 분위기 조성하는 데 신경을 좀 쓰려고"

"그렇죠. 차별화도 필요하겠고 어설프게 현장에 나간다고 해도 계기가 없으면 이도 저도 아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후원회 구성은 마치셨습니까?"

"강주필 전 대사는 확정했고 경제계 쪽으로 몇 명 만나봤지만 휴진 그룹에 조상현이를 같이 후원회장으로 세울까 해. 출마 선언에 동참하는 형식을 시작으로 몇 차례 같이 움직이게 되겠지"

"초선 출마자의 후원회장 체급으로는 확실해 보이네요. 검사 출신 이미지도 적당히 희석시키고. 조상현은 요즘 어떻습니까? 그 집안 시끄러운거야 뭐 어제오늘 일도 아니지만 그룹 사업 확장하려는 움직임도 분주하던데"

김수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휴진 그룹에 대한 아는 체를 보탠다.

"그 정도 회사 이끄는 인물이다 보니 시원시원한 면도 있고 냉정한 면도 있고 그렇지. 동생 얘기에는 여전히 민감하더구만. 뭐 자신감이랑 건방이랑 자만은 경계선이 모호하지 않나? 그 친구 캐릭터가 좀 그래"

"그래도 그 친구 아버지 때부터 쭉 이쪽이었잖습니까. 이번에 일 잘 마치고 챙겨주면 좋은 라인 되겠지요. 그러면 시나리오 진행하는 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김수호의 물음에 권은혁이 잠시 뜸을 들이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단 대전제는 대통령실과 당의 방향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거야.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본격적으로 선거에 돌입하게 되면 목소리를 하나로 관리하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 뭐 두세 사람만 모여도 결을 하나로 맞추는 게 쉽지 않은 건 많이들 알잖나.

나중에 캠프 구성원들에게 가장 강조할 부분이기도 하지만 여기 있는 핵심적인 사람들도 명심해야 하고 시나리오에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야. 그리고 한편으론 이용도 할 줄 알아야 하고.

이를테면 이런 거지.. 최근 김포를 서울로 편입하는 것에 대한 쟁점이 한창이지 않나. 여기서 우리는 그 의도와 현실성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없어. 큰 흐름은 어차피 동조를 해야 할 거고 굳이 말을 보탤 것도 튈 필요도 없지. 그런데 여기서 이런 아이디어를 하나 넣어보는 건 어떨까?"

이야기를 하던 권은혁이 잠깐 쉬면서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말을 이어간다.

"자네들도 김포나 그 옆에 강화 쪽에 불법체류자들 많은 거 알지? 이렇게 김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을 때 이 부분을 건드려주는 거야"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거기는 용산에 출마하는 분께서 언급하셔 봤자 크게 주목을 받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신 검사가 의아하다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받은 권은혁은 가벼운 미소와 함께 답변을 들려준다.

"아직 우리의 상대 후보가 결정된 상황은 아니지만 유력한 인물은 둘 정도로 압축되지. 홍신욱과 서규열. 여러분이 준비한 시나리오도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게 대부분이잖나.

그런데 이 중에 홍신욱의 와이프가 김포 쪽에 식품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그러면 이해가 되나? 유 검사가 수원지검 안산지청 쪽에 있었던 걸로 아는데 알아듣기 편하겠구만"

권은혁의 시선을 받은 유 검사가 답변을 한다.

"예 보통 불법체류자 문제는 법무부와 외국인청, 경찰 쪽에서 정기적으로 가져옵니다. 안산 쪽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유독 많았는데 아마 김포 쪽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야 워낙 뻔하지만 식품 제조공장은 그중에서도 가장 흔합니다. 밀물 썰물처럼 정도의 사이클을 탈뿐이지 가보면 없을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맞아 이렇게 홍신욱과 김포, 불법체류자를 자연스럽게 엮을 수 있는 방식도 있다는 이야기야. 식품 제조공장이니까 여기에는 위생문제도 결부시킬 수 있고. 이런 문제들이 더 요긴한 건 본격적인 선거에 들어가기 전에 어느 정도 흘려 놓으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다는 데 있지.

어디 그뿐인가. 김포를 서울로 편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필요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보일 수 있어서 윗선에서도 좋아할 이야기지.

아무튼 조 변호사 통해서도 늘 강조했지만 이미지는 연좌제야. 잔기스가 많은 게 큰 흠집 하나보다 더 지저분해 보이고 보는 이로 하여금 불쾌함을 자아낸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어"

자리에 앉아 있는 모두가 공감하는 끄덕거림을 보인다.

"여러분들이 준비해 준 시나리오들도 대부분 마음에 들어. 홍신욱의 교수 시절 청탁 관련 불기소 처분했던 건 재부각 시키는 것도 그렇고 서규열이 과거 조사 때 증언 과정에서 했던 표현들 보니 적당히 흘리면 요즘같이 젠더 문제 민감한 시기에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을 거 같애.

여기에 홍신욱의 자녀 입시 문제와 서규열의 자녀 병역 관련 문제는 기자들 통해서 펌핑을 좀 넣으면 될 거 같더군. 포장은 그럴듯하게 하고 내용은 지저분하게 끌면서"

"그리고 주요 측근들 관련해서도 몇 개 확보는 해놨기 때문에 적당한 상황에 쓰면 될 거 같습니다"

권은혁에 말에 이어 조 변호사가 말을 붙인다.

"용산서의 최인우 서장에게 추천받은 형사들 두 명은 우리 신 검사와 유 검사에게 소개했나?"

"예. 관할이라 서로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고 이틀 전에 조용한 곳에서 차 한잔 같이 했습니다"

"선배님은 VIP 쪽과 연락은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

대화를 듣고 있던 김수호가 권은혁에게 묻는다.

"뭐 직접적인 연락이야 드문드문하는 정도고 정무수석 라인으로 조율하고 있네. 이번에 대통령실 사람들이랑 장관까지 몇 명 선별해서 출마시켜야 하니 외부에 있는 나까지 직접 손길 넣기에는 정신이 없지. TK나 부울경 쪽으로 출마자 교통정리 끝나면 직접적인 입김이 몇 번 올 거야.

최근에 지지율도 그렇고 임기 후반까지 동력을 유지하려면 이번 총선에 사활을 걸어야지. 다들 표정 관리는 하는 중이지만 긴장감은 높은 상황이야"

"그렇잖아도 분위기가 팽팽한 게 참 쉽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김수호가 조심스럽게 느낌을 말한다.

"자네 말이 맞아. 후광효과는 기대하지 않고 준비하는 게 좋을 거야. 전장 판세가 불투명한 상태라고 생각하고 국지전에 임한다고 봐야지.

그런데 이런 상황일수록 인물론이 부각된단 말이야. 그래서 아까 말한 대로 잔기스를 여러 개 먹이는 게 유효할 수 있는 거고"

"검사 시절에도 바쁘셨지만 앞으로 반년은 정말 바쁘시겠습니다"

김수호의 말에 권은혁이 술을 따라주면 말한다.

"뭐 어쩔 수 있나. 큰일 한번 해보려는데 그 정도는 각오해야지. 그래도 김 검사는 아직 나올 생각하지 말어. 안에서 더 올라가야지"

김수호가 잔을 받으며 답한다.

"선배님들이 다 잘 풀리시는 게 저희한테도 좋은 일이라는 것쯤은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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