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롭고 간섭이 심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노강완이 인초연으로부터 들은 이주아 실장에 대한 평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겠군요"
"예.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더군요.
트리플에 들어와서 금방 실장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증명했고 회사의 다른 연예인들로부터 신망이 두텁다고 하더라고요. 초연이는 개인적인 일까지 너무 케어가 들어와서 불편하다고 했지만 연예인은 사람 그 자체가 상품이라는 논리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죠.
휴식 기간에 대한 스케줄과 내용은 물론이고 전반적인 인간관계까지 파악한다고 들었습니다. 실장이 되면서 소속 연예인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포지션을 일일이 분석해서 전달한 것도 그 회사 내에서는 유명한 얘기라고 하고요"
"그 이주아 실장이 인초연씨의 마약 관련 문제를 몰랐을까요?"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연이가 직접 알렸을 리는 당연히 없을 거고 주변 인물들이나 행동의 변화에 대해 관심이 깊다면 의심해 볼 수는 있겠죠. 대마초 경력도 있으니"
"혹시 같은 소속사의 도트.K 혹은 김도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었습니까?"
승환의 질문에 노강완의 눈이 살짝 커진다.
"정말 꽤 많은 부분을 조사하셨나 보군요. 그 사람 이야기는 몇 번 나온 적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오빠라면서 몇 달 전에 자기네 회사로 들어왔다고 하더라구요. 센스도 있는 사람이고 자기 일에도 도움이 될 거 같다면서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했습니다. 초연이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도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까?"
"지금 상황에 꼭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아직인 수준입니다"
두 사람 모두 말을 마치고 잠깐의 침묵에 들어갔다.
"이 문제가 어떻게 되길 바라십니까?"
침묵을 깨고 승환이 물었다.
"그저 초연이가 잘못된 선택을 그만하고 평범하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야 제가 선택한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를 생각이지만 초연이는 자신의 몸도 버리고 스스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일단 사람으로서 살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강완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오늘 해주신 말씀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노강완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기사를 쓰지는 않겠습니다. 해명도 부연도 동정도 바라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인초연씨에 대한 기사는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개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사회를 위해서도 그렇고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더 짙어지네요"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조금은 엄숙한 표정으로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승환은 재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선생님 나 지금 노강완 만나고 들어가는 길이야"
"노강완?? 어떻게 연락이 됐나 보네??"
"응 그동안 꾸준히 연락 요청하는 메시지를 넣었는데 드디어 먼저 연락이 왔더라고. 그래서 만나서 궁금했던 것과 확인하고 싶었던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했어"
"우리가 궁금해했던 거는 역시 인초연 때문이었나?"
"얼추 맞아. 노강완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본인 스스로와 야구보다 다른 것에 의미를 더 부여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그게 인초연이었고. 그렇지만 모든 것은 본인 선택이라고 강조하더군"
"흠.. 여자에게 빠져서.. 아니 사랑에 빠져서 그런 선택을 했다라"
"뭐가 됐든 어리석은 선택이었다는 건 변함없지"
"그리고 확인하고 싶었던 건?"
"아.. 인초연의 또 다른 문제에 관한 건데 노강완은 알고 있더라고"
"또 다른 문제?"
"한 선생님이 단체창에서 얘기한 낌새. 덕분에 꽤 힌트를 얻기도 해서 잘하면 충격을 던질만한 기사가 나올 거 같애. 터지면 한 선생님한테 밥 사야지"
재승은 승환이 마약 문제에 대한 접근이 상당 부분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굳이 아는 척하지는 않기로 했다.
"근데 그러면 제이제이넷의 밤 행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음.. 내 머릿속 시나리오로는 민우랑 너랑 나랑 다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어때?"
진태민 회장의 사무실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그래서 행사 준비는 어느 정도로 진행되고 있어?"
진 회장의 질문에 진종연이 대답한다.
"등급별로 우수자와 지역별 우수자 등 시상을 위한 파악은 마쳤고 축하행사 게스트 섭외까지도 완료했어요. 지난주에 진행한 광고 촬영은 지금 편집에 들어가서 그날 처음으로 공개할 예정이구요"
"내빈은?"
"제품 관련해서 중요 거래처인 신주물산과 고유유통 대표들이 참석하고, 서울경제인연합회 회장이랑 용산구의원 2명도 초대에 응한 상황이에요. 연예인 몇 명의 축하 인사 영상도 따놨고요. 행사에는 이번 광고 감독인 도트.K와 모델 인초연도 참석합니다"
"요즘 매출은 어때?"
진 회장이 윤석규 실장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묻는다.
"전반적으로 우상향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업계에서 자리를 잡는 과정이지만 가입 회원 수나 매출액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이번 행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걸어서인지 최근 수치도 잘 나오는 편이라 행사 당일 발표할 데이터도 상당히 긍정적일 것 같습니다"
"음.. 이런 행사는 성대하면서도 요란할 필요가 있어. 우리야 그동안 건설로 밥 먹어왔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겠지만 제이제이넷 같은 비즈니스는 분위기가 생명이지. 최대한 분위기 띄우고 대대적으로 알리도록 해. 기자들 초대에도 신경 쓰고"
"예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종연이 너는 요새 다른 생각하는 건 아니지? 쓸데없는데 정신 팔지 말고 맡은 역할 잘 수행해"
"아이 참.. 알겠다구요"
진 회장의 말에 짜증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하는 진종연이다.
"그리고 요즘 건설사들 문제 여러 군데서 터지면서 분위기 최악인 것도 염두에 두고 있을 줄 알아야 해. 소나기는 피헤가란 말은 그 누구보다 회사 꾸려나가는 사람들한테는 진리야. 더불어 우리 입장에서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하고 어떻게 기회를 삼아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지"
진종연에게는 잔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진유건설 후계자로써 아들을 포기하지 못하는 진 회장의 진심이 담긴 말이다. 윤석규는 가신으로써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만 진종연이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정리되는 줄 알았던 진 회장의 말이 이어지려고 하자 진종연과 윤 실장의 시선이 다시금 진 회장의 얼굴로 모인다.
"너 혹시 인초연이하고 가깝게 지낸다는데 의미가 있는 거냐?"
진 회장의 물음에 진종연은 약간 당황하며 윤 실장을 살짝 쳐다본 뒤 답변을 준비한다. 아버지 입에서 인초연의 이름이 나오는데 윤 실장이 무관할리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모임에서 만난 뒤에 동갑이라 그냥 편하게 지내는 사이에요. 이번에 광고 모델로 기용한 건 화제성이나 이미지가 적당해서 선택한 거고요. 다른 의미로 신경 쓰시거나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적당히 둘러대며 진 회장의 눈치를 보는 진종연이다.
"하나하나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그만큼 처신이 중요하니까 하는 소리야. 늘 혼자 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무슨 말이라도 유리할 것 없는 상황이다 보니 진종연은 최대한 숙이면서 대화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스타일리스트 팀장 들어오라고 해"
트리플 회의실에 앉아있는 이주아 실장이 곁에 서 있던 직원에게 지시한다. 맞은편에는 이미 인초연이 자리하고 있다.
직원이 회의실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자 이주아 실장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번 제이제이넷 광고를 기점으로 이미지에 변화를 좀 줄까 해. 그래서 초연이 의견도 들어볼 생각이고"
자연스러운듯하면서도 직접적인 제안이지만 마치 답을 정해놓은 듯한 느낌이 가득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 변신을 얘기하시는 거예요?"
사전에 논의된 적 없는 주제지만 주도권의 무게 추를 따져봐도 인초연은 먼저 들어보자는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염색을 하자"
"염색이요?"
여성에게 머리카락 길이와 색깔의 의미는 심히 중대하다. 단순한 스타일링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이미지를 좌우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적인 심리 상황까지 대변하는 것이 머리 스타일이다.
특히 염색이 여자 연예인에게 추구할 수 있는 콘셉트 그리고 작품의 다양성에 영향을 주는 것까지 고려하면 의미가 더욱 크다.
"갑자기 왜 그래야 하죠?"
생각지 못한 제안에 놀란 인초연은 되물었다. 말의 억양에는 반발하는 마음이 확실하게 녹아있다.
"못 알아들었어? 이번 광고를 계기로 이미지 변화를 꾀하려는데 머리 색깔에 변화를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일 거 같다는 게 회사의 결론이야"
"제가 몰라서 묻겠어요? 아니 염색이 무슨 여고생 기분 전환하는 것도 아니고 제 입장이나 의견은 생각 안 하는 건가요?"
"왜? 싫어?"
"그걸 말이라고 물으시는 거예요?"
원래 불편한 사람이었지만 계속되는 친절하지 않은 설명에 인초연도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시종일관 사무적인 말투로 이야기를 하던 이주아 실장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인초연에게 눈을 똑바로 맞춘다.
"인초연. 너 요새 뭐하고 다니는 거야?"
불편함을 넘어서 고압적인 자세로 바뀐 이주아 실장에게서 인초연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뭘 하고 다니냐는 소리가 무슨 말이에요? 일하잖아요"
노크를 하고 회의실로 문 열고 들어서려는 스타일리스트 팀장에게 이주아 실장은 손짓으로 제지하며 다시 나가라는 신호를 준다.
"이미 소문 수준은 넘어섰는지도 몰라. 너 도수하고 이태원 쪽에서 하고 다니는 짓"
이주아 실장의 말에 인초연은 대답을 쉽게 잊지 못했다. 단순히 거짓말이나 회피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주아 실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불편한 상대가 그것을 알고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초연을 한꺼번에 덮치면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느샌가 고개를 숙인 인초연은 손도 떨기 시작했다.
이런 인초연을 관찰하던 이주아 실장은 자신이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직접적인 대답보다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의자 등받이로 몸을 뉘며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진다. 인초연에게서 시선은 거두지 않은 채로.
1분여의 시간이 흐른 뒤에 이주아 실장이 먼저 입을 연다.
"진종연은 우리 클라이언트이기 때문에 우리 쪽에서 뭐라 말할 수도 없고 계약에 따라서 일만 하면 돼. 그치만 너와의 관계나 너 그리고 도수랑 하고 다니는 짓에 대해서 회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당장 진종연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않을 테니 먼저 탈색하고 염색 준비해. 왁싱도. 광고 이미지 연결이 있으니 곧 있을 제이제이넷 행사에 참석하기로 한 스케줄 직후에 진행하는 걸로 하고.
그리고 어디까지나 이건 일단 임시방편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인초연은 약간의 눈물이 고인 채로 당장의 대답은 못하고 있다. 새삼스럽게 겁이 나는 상황과 복잡한 감정을 추스르는데 시간이 필요한듯하다.
"치료를 받고 싶으면 얘기해. 도수도 마찬가지고.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해 볼 테니까. 하지만 분명히 말해두는데.. 이 일 해결하고 싶으면 인생을 걸어. 그렇지 않으면 너희 떨궈내는 건 일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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