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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오드아이 체육선생

오드아이 체육선생 18 - 축제 막바지

by 서여다 2025. 6. 6.

가을이를 데리고 머그잔 만들기와 꽃꽂이 체험을 해본다. 물론 나나 이선이 가을이를 안고 손을 포개서 하는 것이지만 가을이도 나름대로 진지하고 신기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곳 축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카약 체험은 눈으로 대신한다.

어린이 자녀들과 함께 온 아빠들의 수고로움에 동료애가 느껴지면서도 개중에 진짜 즐거워하는 아빠들도 몇몇 보인다. 아마도 몇 년 후면 나도 가을이와 노를 젓고 있겠지라는 상상을 해본다.

4시가 넘어가면서 햇살은 확실히 기운이 꺾였고 공기가 차가워졌다는 것을 피부가 알려온다. 야간 프로그램을 겸하는 축제는 아니다 보니 현장 분위기도 서서히 정리되어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지금이 머릿속 한켠에 계속 자리하고 있던 제이제이넷 광고 촬영 확인을 위한 전망대에 오를 타이밍이다.

"이제 슬슬 전망대 한번 올라가 볼까?"

"지금? 좀 늦지 않았어? 차 막하기 전에 움직이는 게 낫지 않으려나"

"아냐~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올라가 봐야지. 그리고 여기는 낙조가 유명해서 이때쯤 올라가는 게 딱 좋을 거 같어"

무리한 제안이 아니다 보니 이선도 순순히 따른다. 펴놓았던 자리를 먼저 정리하고 아라 타워 전망대가 있는 경인항통합운영센터로 들어섰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는 가을이는 로비 바닥에 있는 트릭아트를 보며 관심을 보이더니 홍보관에도 기웃거린다. 그런 가을이를 이선과 따라다니며 적당히 둘러보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23층에 있는 전망대를 가기 위해 탑승한 엘리베이터는 투명 유리로 되어있어 올라가는 중에는 주변 전경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를 오르는 와중에도 이선에게 안겨있는 가을이의 눈이 바쁘다.

"오~ 멋지네"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는 전망대에 오르자 이선도 만족감을 표현한다. 가을이도 신나하지만 유리창 근처에는 쉽게 가지 못하는 눈치다. 아무래도 높이가 주는 공포감이 있을 나이다.

"올라와보길 잘했지? 해넘어가는 시간 다가오면 더 멋질 거라고 하더라고"

전망 감상만을 위한 순수한 의도로 올라온 것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기대 이상의 풍경을 잠시 감상해 본다. 그리고 곧 광고 촬영이 진행되는 방향을 향해 자리를 옮긴다. 물론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가을이는 내가 안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도 얼핏 확인해 놨지만 지금 광고 촬영은 아라빛섬 수변무대 쪽에 있는 정서진 광장에서 진행되고 있다. 광장의 뒤쪽으로 해가 지는데 바다와 영종대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나 같은 일반인이 보더라도 구도가 꽤 좋아 보이는 위치다.

육안으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거리는 아니지만 저곳에 진종연과 인초연이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어렴풋한 수준이지만 빨간색 아이콘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란색 아이콘과 깜빡이는 아이콘까지 있어 궁금증은 커진다.

문득 아침에 봤던 복권방 아저씨에게서 아이콘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능력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아무튼 이선과 가을이의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 자연스럽게 이선을 떠본다.

"저기 무슨 촬영하는 거 같은데 한번 가볼까?"

"응? 아 저쪽에.. 그런데 굳이?"

이선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냥 궁금하잖아. 혹시 알아? 유명한 연예인이라도 있을지. 나온 김에 누구 있는지만 보고 출발하자"

전망대에서 내려온 뒤 정서진 광장까지는 그래도 꽤 걸어야 한다. 높은 곳에서 보던 것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고 목적성도 취약했지만 어찌 됐든 촬영하는 곳 근처까지는 왔다.

촬영장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는 않았지만 스태프들은 접근할 수 있는 거리와 스마트폰 촬영에 대해 제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 시야를 가릴만한 구조물이 없기 때문에 대략적인 장면은 어렵지 않게 보인다.

현장에서 분위기를 잡아 주는 음악이 흐르고 모델로 나선 인초연이 포즈와 멘트를 몇 차례 반복하고 있다.

"인초연이네?? 역시 모델은 모델인가 봐"

옆에 있던 이선이 인초연을 확인하고 한마디 한다.

"뭐 그렇겠지"

지금 이 순간 아이콘은 아이콘이고 정신은 정신대로 똑바로 차려야 한다. 여자의 여자에 대한 칭찬에 쉽게 동조하면 좋을 일이 없다.

아주 건조한 대답으로 적당히 회피하는 능력을 우수하게 발휘한다.

"승환 오빠 기사 크게 터지고 간접적으로 스포트라이트 몰리더니 광고 촬영까지 가는 건가?"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서 그런가 서울 어딘가에 사는 김 모 씨가 그러더래 인초연 요즘 핫하다고"

"무슨 소리야?"

"민우가 아는 사장님이 인초연이 요즘 핫하다고 했다더라고. 그런 식으로 핫한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선에게는 제이제이넷에 대한 이야기를 특별히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노강완과 결별한 인초연'에 대한 정도로만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시선은 진작에 인초연을 지나 진종연에게 향한 뒤 촬영감독을 하고 있는 파란색 아이콘의 주인공에게로 닿아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얼마 전 이태원 루프탑에서 봤던 파란색 아이콘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저 인물 역시 마약과 관련한 문제에 공범 수준 이상의 관여를 하고 있다는 뜻인데 일을 통해 만난 관계인지 마약을 통해 가까워진 관계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이쯤에서 여의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닌 척 사진 찍기 기술을 시연해 본다. 승환이 어제 공항을 다녀왔다고 하니 새로운 건 없을 수 있지만 이곳 촬영의 진행에 관심이 있는 만큼 몇 장 보내줄 생각이다.

또 다른 이유로 조금 전부터 촬영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진종연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 깜빡이는 아이콘의 주인공에 대한 증거도 확보할 요량이다.

머리 위로 파란색 주사기 아이콘이 천천히 깜빡이는 인물은 마흔 안팎 정도의 나이로 보인다. 주변을 자연스럽게 둘러보며 진종연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지만 둘 사이의 개인적인 친분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일단 두 사람 모두 표정이 편안하지만은 않고 대화 중에 웃음이나 미소가 나오는 타이밍이 거의 없다. 시종일관 진지한듯한 대화를 하면서 한쪽이 설명하는 모습에 한쪽이 귀 기울이는 것을 번갈아 하고 있다.

나에게만 보이는 현상으로 비추어보면 심상치 않은 만남이기에 두 사람의 사진도 몇 장 시도했다.

그렇게 무난히 미션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찰나.

깜빡이는 아이콘의 주인공과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적인 당황을 했지만 흔히 일어나는 눈 맞춤 정도로 넘어가려고 시선을 떼고 표정관리에 들어간다. 동시에 이선에게 돌아가자는 얘기를 하며 가을이를 챙겼다.

주차장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자연스럽게 돌아서면 된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스마트폰을 들고 셀프 팔짱을 낀 상태로 어정쩡하게 도촬을 하던 것을 본 것이라면 곤란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차로 걸어갈 뿐인데 평소엔 의식하지 않는 걸음걸이까지 신경 쓰인다. 긴장을 풀기 위해 이선에게 가벼운 이야기를 던질까 싶지만 마땅한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 와중에 우려가 현실이 되려는지 언뜻 보이기로 남성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계속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어느샌가 따로 떨어진 곳에 있던 젊은 남성 한 명이 붙어있다.

그리고 잠시 뒤.

"저기요~!!"

"예!? 예.."

나를 부르는 것이 분명함에 숨길 수 없는 당황함을 묻힌 채로 대답하며 뒤돌아본다. 이선도 함께 돌아선다.

깜빡이는 아이콘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남자는 얼굴에 궁금증이 가득한 표정이다. 그 모습을 대하자니 '왜 나를 몰래 촬영했느냐', '스마트폰 사진첩 좀 보자'라고 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의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남자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시선을 아래로 향하며 질문을 한다.

"혹시.. 이 신발 어디서 사셨나요?"

"네?"

"신고 계신 그 신발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구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 싶어서요?"

내가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며칠 전 결혼기념일 선물로 이선으로부터 받은 신발이었다. 오늘 처음으로 밖으로 신고 나왔다.

"아 이거요? 여기 제 와이프가 얼마 전에 선물해 준 건데요. 하하"

다행스러움을 멋쩍은 웃음으로 한껏 포장하며 답변을 하는 나에 이어

"오빠가 눈여겨보던 모델이라 제가 개인적으로 수소문한 사이트에서 직구로 구했어요"라면서 이선이 대답을 했다.

이에 옆에 있던 젊은 남성은

"주무관님도 참.. 세관에서 일하시는 분이 지나가시는 분에게 신발 직구를 물어보고 계시고.."라며 핀잔 아닌 핀잔을 웃음 띠며 던진다.

"이 사람아 내가 신발 좋아하는 거 알면서 그래? 이 신발이 아직 국내에 안 들어와서 그렇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상당하다고. 크~"

주무관님이라 불린 남성은 신발에 취미가 있는지 나의 신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짧은 관찰의 시간을 지나 신발 잘 봤다며 인사를 하고는 두 사람은 주차장의 다른 방향으로 갈 길을 가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입에서는 판단보다 빠른 제안이 나오고 있었다.

"신발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혹시 이 모델 구할 수 있는 곳 있으면 연락드릴까요? 명함 가지고 있으시면 하나 주시든지요?"

나의 제안에 이선과 남성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한다.

"아 그래 주시겠습니까? 이렇게 까지나 호의를 베풀어주시고 괜히 불편을 드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남성은 고마운 마음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명함 지갑에서 명한 한 장을 꺼내 정중하게 건넨다. 그러면서

"구해진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지만 혹여 못 구하더라도 마음 써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그저 여부만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살펴 가세요"

두 남성이 떠나자 이선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뭐 그렇게까지 알려주려고 해? 아는 사이도 아니잖아?"

"신발을 좋아한다잖아. 서로 돕고 살아야지"

"그리고 사이트는 내가 아는데? 오빠 안 알려줄 껀데?"

입을 삐쭉하며 이선이 장난을 친다. 그런 이선을 보며 씨익 웃고 남성으로부터 건네받은 명함을 살펴봤다.

[인천본부세관 통관감시국 통관검사과 주무관 주명선]

파란색 주사기 아이콘이 깜빡거리는 남성이 인천세관의 통관검사과 주무관이라.. 경험으로 봐서는 오늘 진종연과의 대화에서 모종의 청탁과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하게 하는 인물이다.

이에 이선에게 가을이를 데리고 먼저 차로 가라고 한 뒤에 단체창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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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승 : 아냐.. 민우야 너 거기 가라>

<민우 : 엥?? 왜??>

<재승 : 아 정확히 말하자면 만약에 그 행사가 취소가 안된다면 말이지>

<민우 : 그건 또 뭔 소리야?>

<재승 : 내 생각엔 승환이가 뭔가 잡은 낌새가 예사롭지 않아. 행사 이전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행사가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않을 거 같애ㅋㅋ 잘하면 좋은 구경 볼 수도??>

<승환 : 그랬으면 좋겠다>



아까 나눈 대화를 다시 봤다. 농담을 빙자한 메시지였지만 나의 예상이 이루어질 확률이 조금 더 올라갔다고 혼자 자평을 해본다.

이어 광고 촬영 현장 사진 몇 장과 진종연과 주명선이 대화하는 모습 사진을 올렸다. 승환과 민우 모두 진종연을 알아봤지만 당연히 주명선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궁금해한다.

바로 주명선의 명함을 찍어 올렸다. 민우에게는 알쏭달쏭 한 퀴즈 같겠지만 승환에게는 꽤 효과적인 힌트가 될 것이 분명하다.

민우의 말대로라면 행사는 2주도 안 남았다.

마약사범의 경우 정황과 신고에 따라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아마도 제이제이넷의 밤 행사는 쉽게 흘러가지 않겠지?

아니 꼭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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