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이서 무슨 대화 나누신 거예요?"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송 기자가 묻는다.
"나중에 시간 되면 다 같이 밥 먹자고 했어"
"하... 차장님 저를 너무 물로 보시는 거 아닙니까? 그런 얘기 하자고 따로 불렀을 이유가 없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송 기자 말대로 이주아 실장이 스마트하긴 하네.
내 이름 보고 노강완 기사를 떠올렸나 봐. 그러면서 인초연은 그런 일이랑 결부되어 있지 않다고 얘기하더라고"
"뭐 결부되어 있었다면 진작에 소환조사 받거나 했겠죠. 그런 거 없는 거 보니 그쪽으로는 진짜 무관한 게 맞지 않을까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잠깐 그런 의심이 든 적은 있지만 그건 한참 전이고. 오히려 제이제이넷 진종연 대표와의 관계를 물었지"
"오 직구로 들어가셨네요. 뭐래요?"
"친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과장된 거 같다던데. 젊은 기업 대표랑 모델이니 엮어서 말하기 쉬워서 그런 거 아니겠냐며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고 하더라고"
"친분을 인정했다면 긍정에 가깝네요"
"아무래도 그렇지?"
"그 정도면 간접적 인정이죠. 차장님이 연예부 쪽이 아니시다 보니까 그 정도 표현까지 쓴 거 같고요"
"그러면 연예부 쪽에서는 결별도 물의에 들어가나?"
"연예인도 사람인데 결별이 무슨 죄겠습니까. 인초연의 물의라면 수년 전 대마초 정도인데 그거 말고 더 있대요?"
"그건 나야 모르지. 이태원에서 밥 먹자니까 인초연이 물의를 일으킬 일 없다고 말하더라고"
"뭐 요즘 마약 문제야 여러 곳에서 터지지만 이태원이 워낙 심하고 다양한 약들이 유통돼서 차장님 말씀에 발끈한 거 아닐까요?
왜 얼마 전에 이태원 클럽에서 마약 파티했던 경찰이 용산 아파트에서 추락사했던 사건도 있었잖아요"
"!?"
순간 승환의 머릿속에 이주아 실장이 가리지 못한 굳은 표정이 떠올랐고 인터뷰 동안 어수선했던 인초연의 태도가 재생됐다. 이어 인초연으로 인해 생겼을 노강완의 물리적 상처와 최근 재승이 겪었던 칼부림남이 약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에서 앞다투며 나왔다.
그러자 승환은 스마트폰으로 '마약 중독 폭력성'·'마약 중독 후유증'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집안이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가 좋다. 가족 나들이로는 그야말로 제격이다.
나들이 기분을 내기 위해 이선이 아침 일찍부터 도시락을 준비했다. 재승은 나들이에 필요한 용품과 가을이 물건들을 챙겼다. 일기예보도 확인하며 따뜻하게 입힐 옷과 담요도 잊지 않는다.
선글라스도 챙겼지만 당장 쓰지는 않았다. 대신 얼마 전 안과를 방문하고 장만한 컬러렌즈를 착용했다.
오드아이를 의식해서 항상 선글라스만 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컬러렌즈에 적응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은 서툴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차를 끌고 아파트를 나서면서 편의점에 잠깐 들렸다. 마실 것과 간단한 간식을 사기 위해 재승만 내린다.
부부가 좋아하는 음료와 가을이가 좋아하는 우유를 고르고 과자 두 개를 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편의점 직원이 바코드를 찍고 있는데 출입문 위에 달려있는 종의 '딸랑' 소리와 함께 누군가 들어온다.
복권방 주인아저씨다.
재승이야 그를 알아보지만 복권방 아저씨 입장에서 재승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 인사를 할 만한 관계도 아니다.
그럼에도 재승은 한 가지 변화에 관심이 생겼다. 복권방 아저씨의 머리 위 아이콘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계산을 하고 나올 때 복권방 아저씨는 담배를 주문하고 있었고 다시 한번 힐끗 쳐다봤지만 아이콘은 없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진다.
혹시 증상 또는 능력이 사라진 것일까?
"<제이제이넷의 밤>이요?"
민우는 김 사장과 통화 중이다.
"응 다다음 주에 용산에 있는 에이치 호텔 컨벤션홀에서 출범 1주년 기념행사를 할 거야. 제이제이넷이 이룬 그동안의 성과랑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서 크게 알린다 뭐 이런 거지. 상당히 의미 있는 행사야"
"저는 해당사항이 없잖아요?"
"에이 이 사람아 그러면 내가 연락을 했겠나. 어렵게 자리가 생겼으니까 와보라는 거지. 진짜 어렵게 구한 거야. 비싼 밥도 먹고 기운 받아 가라고"
"밥이야 그렇다 치고 기운은 무슨 말씀이에요?"
"여기에 초대된 사람들이 다들 등급이 높은 사람들이라 축하도 하고 프로모션 결과도 발표하거든. 수입 외에 상금이나 상품도 엄청날 거야.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 모이는 자리라 볼 것도 배울 것도 많지.
나는 말석에도 못 끼는 축이지만 어찌저찌 들이밀어서 자리 두 개 구한 거야"
"어렵게 구하신 건데 제가 가기에는.. 그리고 귀한 자리라 너무 부담스러운데요"
"그런 걱정 하지 말고 일단 와 보기나 해"
민우는 약간의 빈정거림 조차도 주저 없이 외면하며 영업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김 사장이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외로 나온 가을이는 신이 나서 바쁘다. 차에서 내려 적당한 자리에 돗자리를 펼 때까지 부부 중 한 사람이 전담으로 챙겨야 할 만큼 이곳저곳에 관심을 보이며 돌아다닌다.
재승의 예상보다 축제 분위기는 더 그럴듯했다. 본래 아라빛섬 일대가 경관이 좋고 탁 트인 느낌이 드는데 성대하지는 않지만 군데군데 각종 행사가 진행되다 보니 활기가 추가된 모습이다.
현장에서 나눠주는 축제 팸플릿을 받고 대략적인 프로그램을 확인해 둔다. 가을이가 아주 어리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은 많지 않지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을듯하다.
이미 한쪽에서는 한창 버스킹 공연 중이다. 통기타를 든 두 명의 젊은 남성이 적당히 신나는 곡을 연주하며 라이브로 부르고 있는데 악기와 노래가 더해져서인지 가을이 역시 관심을 보인다.
두 곡 정도를 듣고 가을이의 관심도가 떨어지려고 할 때쯤 도시락을 먹기 위해 맡아둔 자리로 돌아왔다. 이선이 잘 만드는 유부초밥과 BLT 샌드위치가 나들이 분위기를 한껏 올려준다.
사실 재승은 오늘 축제에 민우네 가족도 함께 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아이 셋이 있는 집이다 보니 주말에 오히려 밖으로 나오는 것이 육아하는 입장에서 편하고 민우네 아이들이 가을이를 이뻐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민우가 가야 할 경조사가 있어 이뤄지진 못했다.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은 김에 주변 사진을 몇 장 찍어 카톡 단체창에 올려본다. 매년 있는 축제라고 하니 내년에라도 기회가 되면 같이 오자는 멘트도 덧붙였다.
정작 메시지는 승환이 먼저 확인을 했다.
<승환 : 여긴 어디야?>
<재승 : 아라빛섬. '아라 문화 축제'라고 오늘 내일 한다길래 가족들이랑 와봤지>
<승환 : 아라빛섬이라고? 거기 혹시 무슨 촬영하지 않아?>
<재승 : 촬영?? 못 봤는데?? 그냥 공연 좀 있고 행사 부스들만 있는데>
<승환 : 음.. 오늘 제이제이넷 광고 촬영이 아라빛섬 쪽에서 있다고 들었는데..>
제이제이넷이라는 이야기에 재승도 갑자기 긴장감이 높아진다.
<재승 : 인초연이 촬영하기로 했다는 그 광고?>
<승환 : ㅇㅇ 어제는 인천공항에서 촬영이 있었는데 내가 거기 다녀왔거든. 내가 알기론 오늘 그쪽에서 촬영이 있을 거야>
승환의 메시지에 주변을 다시 살펴본다.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훑어보는 시선에 문득 한쪽에 꽤 많은 숫자의 승합차와 탑차가 모여있는 것이 보인다. 축제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어색할 것이 없고 행사장 위주로 신경을 썼기 때문에 특별히 인식을 못 하고 있었나 보다.
재승은 가을이를 안고 가볍게 산책하는 느낌으로 차량이 모여있는 곳 부근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선에게 굳이 먼저 얘기할 필요는 없었다.
보아하니 아직 촬영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고 한창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촬영 소품들 사이로 언뜻 보이는 제이제이넷 브로슈어가 승환이 말한 광고 촬영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라빛섬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란 것쯤은 함께 알고 있다.
재승도 첫 방문이 아닌 만큼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 아마도 지금 촬영 준비를 하는 것으로 봐서는 오후 늦게 본격적인 촬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라고 나름대로 추측해 본다.
다만 지금의 재승 입장에서는 이 주변에 오래 있을 명분이 없다. 아이콘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보이지 않고 이선이 보기에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나마 최선은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나오기 전에 촬영이 시작되고 그의 시선에 무언가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 가방에서 축제 팸플릿이 나온 의도일 것이다.
재승은 적당한 타이밍에 아라타워 전망대를 올라가 보자는 이야기를 꺼낼 계획을 세워본다. 이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이자 촬영 진행 여부도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자리로 돌아와 카톡을 보니 민우도 등장했다.
<민우 : 좋아 보이네~ 아 우리도 오늘 일만 없으면 같이 가는 건데 까비>
<재승 : 그러게 애들도 왔으면 다들 좋아했을 거 같어. 승환아 행사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촬영 준비하는 거 맞더라. 가서 보니까 제이제이넷 브로슈어도 있더라고>
<승환 : 그래? 맞지? 아직 촬영은 안 하고?>
<재승 : 어. 지금 한창 준비만 하는 중이야>
<민우 : 오~~~ 그럼 그 핫하다는 인초연 보는 거야? ㅋㅋㅋ>
<재승 : 핫하다는 인초연ㅎㅎㅎ 근데 언제 올지는 모르겠네>
<승환 : 만약에 촬영 현장 보게 되면 분위기 좀 알려줘. 아마 직접적인 사진 촬영은 어렵겠지만>
<재승 : 어 그러지 뭐. 그런데 뭐 좀 짚이는 거 있어? 어제 인천공항도 다녀왔다면서>
<승환 : 아직은 의심 단계라 뭐라 말하기는 애매한데 진종연이나 인초연은 서인직이랑 다른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잘하면 파장이 좀 클 수 있는?>
재승은 승환의 메시지에서 진종연 일당의 마약 문제 접근에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민우 : 무슨 얘기야?? 진종연한테 문제 생기면 제이제이넷도 큰일 나는 거 아냐??>
<재승 : 뭐 그야 그렇겠지??>
<민우 : 저런... 우리 김 사장님 어쩌나 조만간 '제이제이넷의 밤' 행사에도 간다고 신났던데..>
<승환 : 제이제이넷의 밤 행사는 뭐야?>
<민우 : 출범 1주년이라고 잘나가는 사람들 모아다가 시상도 하고 프로모션도 걸고.. 왜 다단계 보면 자기들끼리 으쌰 으쌰 하는 행사 같은 거 있잖아 그거 한다던데.. 아마 다다음 주쯤에>
<승환 : 그 김 사장이라는 양반도 초대받을 정도로 등급이 높아?>
<민우 : 아니~~ 내가 알기론 아니고 본인도 아니라는데 어렵게 구한 자리라면서 내 자리도 맡아놨으니 가자고 하더라고... 너무 뻔하지 않냐?? 물론 난 안 갈 생각이지만ㅋㅋ>
<재승 : 아냐.. 민우야 너 거기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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