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비틀어진 이야기

비틀어진 이야기 5 - 올리비아 채널

서여다 2025. 6. 4. 09:00

"피고 측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주심판사는 피고인 측을 향해 눈길을 보내며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만큼 감정 따윈 묻지 않은 표정이다.

판결을 내리기 전 마지막 단계.

배심원들을 포함한 법정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판사의 발언을 따라 피고와 변호사가 앉아 있는 곳으로 향한다.

법원 방청석에 앉아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열심히 메모를 겸하고 있다. 기자들이다.



20년 가까이 유명세를 이어온 인플루언서이자 유튜버 부부의 사망.

살해를 통한 죽음을 일으킨 범인은 부부가 금지옥엽으로 키운 외동딸.

이 사실만으로도 바깥의 이목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오히려 더 많은 기자들이 필요했을만한 사건이다.



판사의 제안에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피고가 변호사의 팔 한쪽을 살며시 잡는다.

살짝 놀란 변호사는 옆자리의 피고를 내려다보고는 상체를 숙인다.

이 모습만으로도 약간의 동요가 스치는 장내.

검사 측과 배심원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주심판사조차 안경을 매만지며 자세를 살짝 고쳐 앉는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알고 있는 피고인의 목소리를 지금까지의 재판 과정에서는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저 변호사의 고군분투 아래로 피고인은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시종일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을 뿐.

피고인의 요구를 접한 변호사는 자신의 눈을 키워 반문을 대신했다.

이에 피고인은 천천히 끄덕였고 변호사는 한 번의 무거운 고갯짓과 함께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시소를 하듯 천천히 일어선 피고인.

죽은 부부의 딸이자 살인사건 피의자 올리비아다.



올리비아는 그렇게 자리에서 선 채로 재판장을 천천히 둘러본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와 자신이 눈을 마주쳤다고 착각했지만 곧장 시선의 흐름일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무표정한 얼굴만큼이나 감정이 읽히지 않는 눈빛은 그만큼 착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재판장을 한번 둘러본 올리비아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깊고 고요한 심호흡을 세 번 했다.

다시 천천히 열리는 눈빛. 닫기 전과 사뭇 다르다.

이내 그녀는 살짝 움직여 이동하며 입을 열었다.



"올리비아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음성으로 공간을 채운 첫마디. 사람들은 새삼스레 짧게나마 여진을 일으킨다.

그녀는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저를 아시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분은 한 손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라 따로 인사는 드리지 않겠습니다.

저는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있고 부정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고요.

다만 이 순간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선 이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이미 나에 관한 이야기 아니 모든 이야기를 안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 수도 있겠지요.

여기 있는 올리비아는 내가 가장 모를 겁니다.



나는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17살이 된 지금까지 분명히 존재했지만 동시에 보여졌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뇌가 완전히 생성되기도 전부터 나를 보고 있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3-4살 이전의 내 모습을 나보다 더 정확히 설명합니다.

어쨌든 당시 나의 웃음은 그들을 미소 짓게 했을 것이고, 나의 성장은 그들에게 색다른 감동이었겠지요.

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해요. 전혀.



아마 내가 말을 알아듣고 할 줄 알게 되면서부터의 모습, 아니 상황이라고 해야겠네요. 아무튼 그즈음부터는 더 드라마틱 해졌을 거예요.

직접적인 교감이 가능한 그 나이 때 여자아이의 사랑스러움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환하게 비추니까요.

부모님과 스케줄을 맞추고 만났던 사람이든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든 나를 향한 감정은 영상을 보더라도 확인할 수 있죠.

나도 그때는 그저 좋았을 거예요. 지금의 마음과 달랐을 건 분명해요.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내가 허락하지 않은 애칭으로 불리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시기는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관심을 사랑으로 아는 사람들이 달려드는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비슷한 때였죠.

웃긴 건 뭔지 아세요?

그런 식으로 나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나름 진심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거기서 머뭇거리는 나의 반응이 한두 번은 에피소드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NG가 된다는 거죠. 나는 너무 당황해서도 울어서도 안되는 거였어요.

그들은 진심이었고 나는 그들이 알고 있는 잘 웃고 친절한 소녀여야 하니까. 우리 엄마 아빠가 추구했던 어린 올리비아의 편집 방향, 아시잖아요?



나는 마트도 싫어하고 교회도 싫어해요.

축제는 화려함에 잠시 정신을 놓을 수 있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싫어지죠. 다 같은 이유에요.

가장 최악인 곳은 어딘지 아세요? 공항이에요.

남녀노소의 낯선 이들을 넘어 인종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까지 나를 부르고 아는체해요. 예고 따윈 없죠.

나의 혼란스러움은 아랑곳 없이 돌발 상황은 재미가 되고 그런 나를 찍고 있는 엄마와 아빠는 쾌재를 불러요. 물론 아주 노골적이지는 않았어요. 그들은 프로니까요.

아무튼. 이대로 어른이 된다면 정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거예요"



여기까지 말한 올리비아는 어느새 법정의 중앙 쪽에 다다랐다.

자연히 뒤편에 있는 판사들을 제외하곤 모두 씁쓸한 표정의 올리비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의 법정은 마치 올리비아의 모노드라마가 진행 중인 무대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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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첫사랑을 가지고 계시겠죠?

제가 이렇게 질문하면 여러분들은 퀴즈에 정답을 맞히듯 누군가를 떠올릴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초등학교 때 단짝이었던 제이슨 얘기가 아니에요.

너무너무 다행스럽게도 영상에 공개되지 않은 아이였죠. 그게 가능했냐고요?

물론 엄마 아빠의 눈과 카메라를 완벽하게 피하는 건 불가능했죠. 그건 사춘기 소녀의 히스테리적 반대가 이룩한 몇 안 되는 쾌거였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주말에 따로 시내에서 보기로 했어요.

익숙하지 않지만 몽실몽실 좋은 기분. 눈을 마주치고 하나하나 반응하며 대화하고 싶은 상대. 어디서 웃는지 어떻게 웃는지 맞춰보고 싶은 시간.

나는 이런 걸 느끼고 그리며 나갔었죠.

하지만 그는 나를 예습해왔더군요"

이 부분에서는 군데군데 분명한 몇 개의 탄식이 새어 나왔다.



"그 친구는 거창한 위인이 아닌 평범한 소녀의 성장기와 일대기를 숙제검사받는 아이처럼 꺼냈어요.

심지어 버릇이나 습관 같은 프라이버시를 공개됐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언급하더군요.

그래요. 그 아이는 그게 친근함의 표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에 의해 각색된 시트콤 같은 에피소드들을 감명 깊게 봤다고 소감처럼 떠드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때 느꼈어요.

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나를 향하는 감정 중 그나마 긍정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호기심 단 하나뿐이라는 걸"

씁쓸한 표정에 처연함이 좀 더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 아니 팔로워-구독자들이라고 정확히 말하죠. 그들은 늘 마치 내게 답이 있는 행동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요.

자신들이 아는 '올리비아', '리브'는 이런 사람이고 항상 이럴 것이고 이래야 한다는.

여러분들은 제가 중학교만 4번을 옮긴 걸 아실 테죠?

처음 한두 번의 전학에서는 모두가 저를 응원했었어요. 한창 예민할 나이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무례하고 리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저의 부족함과 잘못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네 번째 전학이 결정되자 교육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났어요. 난 그렇게나 많은 교육전문가가 우리 채널을 보는지 몰랐어요.

물론 내가 무결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올라오는 영상에 몇 줄의 소감문을 쓰는 사람들이 내가 갖는 정체성의 혼란과 공포, 두려움 등에 관해서 과연 얼마나 알까요?

나에 대한 관심보다 나를 보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더 큰 부모 곁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이들이 말하고 필요로 하는 '올리비아'는 어떤 사람인가요?



얼마 전 변호사에게 들었어요.

사건 이후 과거의 영상들에 리플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이때는 이렇게 천사 같던 아이가..',

'신의 장난이 아닐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어떻게 그런...',

'리브. 너의 부모님은 너를 너무나 사랑해서 너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던 거란다'

뭐 이런 내용들이라고 하더군요.

여러분..

그건 채널 속 올리비아에요.



라이브 방송을 하는 엄마 아빠에게 약을 탄 음료수를 전했던 장면을 1만 2천 명 정도가 보고 있었어요.

괴로워하는 두 분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아 하는 제 모습에 댓글창은 무척이나 요란했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 당시 911에 접수된 신고전화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거?

해외 구독자도 있으니 모두의 문제는 아닐 거예요. 주(州)가 다르기 때문에 별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했을 수도 있고요. 리얼한 연기나 깜짝 카메라라고 받아들인 경우도 있겠죠. 그리고 또?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나는. 우리 가족은. 그냥 콘텐츠로 존재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나는 그 콘텐츠를 종료한 것이고요"



여기까지 이야기한 올리비아의 얼굴에는 미약한 미소와 함께 왼쪽 눈망울 옆으로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청중은 침묵했고 환한 조명이 무색할 만큼 어둠이 내려앉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까지는 용납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오늘 판결이 끝나고 나면 여러분들은 아마 또 다른 유튜브 채널을 찾게 되겠죠.

부탁 하나만 할게요.

부디 나와 같은 자녀들이 나오는 채널은 지워주세요.

셰어런팅(Sharenting)이요? 웃기지 말아요!!

양육을 공유한다는 말장난을 하는 사람도 믿는 사람도 모두 또 다른 올리비아를 만들 뿐이에요.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지 누구에게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설령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에게도 그런 권리는 없어요.

그런 올리비아는 나 하나로 족해요. 그것까지 빼앗아가지는 말아주세요"



올리비아의 마지막 변론을 끝으로 판사들과 배심원들은 회의에 들어갔다.

재판 전 이 명백한 존속살인에 대한 판단은 명료하고 그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라 전망됐다.

만장일치를 요구하는 배심원 제도 역시 전혀 걸림돌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예측도 함께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들의 회의는 길어졌고 이들이 비운 법정 안의 웅성거림은 길어지는 시간만큼 커져갔다.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은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 길이가 길어진다는 것은 그 이견이 단단하다는 방증이다.



검사와 변호사가 풍기는 긴장감과 다르게 올리비아는 다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만 지친 기색과 후련함 사이의 어딘가 같은 분위기가 더해져있다.

그리고 돌아온 판사들과 배심원들.

이들은 모두 약간씩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회의의 온도가 어렵지 않게 추론된다.



자리에 앉은 주심판사는 판결문을 읽기 전 잠시 올리비아를 내려다봤다. 마지막 발언을 요구할 때 보였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는 어딘가 다른 얼굴.

몇 초 뒤 고개를 돌려 천천히 준비해온 판결문을 읽어 내려간다.

"...... 이에 올리비아에 대한 본 법정의 최종 판결은..."
......
....
..



이날 저녁부터 거의 모든 매체의 톱뉴스는 올리비아 사건의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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