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오드아이 체육선생

오드아이 체육선생 4 - 시작된 확신

서여다 2025. 6. 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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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머릿속이 복잡하다. 경기는 워리어스가 승리했지만 기쁨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석현을 발견한 이후로 일어난 현상들이 혼란스러움을 일으켰고 생각의 흐름이 불편한 예감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5회 초 타석에 들어선 노강완은 자신만의 의식을 진행했다. 하지만 코끝을 튕기는 마지막 행동은 없었다.

그에게 흔치 않은 무려 7구까지의 승부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더욱이 첫 스윙이 6구째에 나왔고 파울이었다. 그전까지 타격을 할듯한 움찔거림은 있었지만 배트가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무기력하게 루킹 삼진으로 타석을 마무리했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선수 나름의 전략과 컨디션에 따라 순간순간에 대응하는 것이 스포츠니까 마냥 이상하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 보여준 노강완의 모습은 확실히 어색했다.

그는 앞선 첫 번째 타석에서 잘 맞은 2루타를 때려냈다. 컨디션도 분위기도 나빠 보이지 않았고 상대 투수가 아직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두 번째 타석을 맞이한 상황이었다.

초반 승부를 좋아하는 성향까지 고려하면 두 번째 타석의 무기력은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나는 코끝을 튕기는 것이 노강완이 집중한 상황에서 무의식중에 나오는 행위라고 믿고 있다. 나름의 관찰 결과였고 내가 아는 그의 긴 프로생활에서 계속되어온 습관이다.

그런데 이 행위가 7번의 과정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그의 집중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아니 그가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첫 번째 이유다.

정작 8회 타석에서는 전형적인 노강완의 모습을 다시 보여줬다는 점도 오히려 의구심을 높인다.

결과는 3구째 내야 땅볼로 아웃됐지만 습관도 그대로 재현했고 초반 승부도 시도했다. 그래서 두 번째 타석이 더욱 이상하게 다가온다.

사고가 이렇게 흐르자 나에게만 보이는 아이콘의 존재 때문이 아닐까라고 스스로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해 본다.

인정한다. 차와 술병으로 이루어진 빨간색 아이콘을 지닌 녀석에게 사고를 당했던 입장이다 보니 배트와 돈이 겹쳐진 아이콘들이 늘어나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추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증거불충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콘이 없었다면 이런 생각을 했겠냐고 지적할 수도 있고 아이콘으로 인한 왜곡된 추측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자. 오히려 아이콘이 없었다면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점을.

그렇다 승부조작.

그 교묘함과 별거 아닌듯한 순간에 대한 조작은 실제로는 이름처럼 거창하지 않다.

그리고 승부조작은 필연적으로 불법 베팅과 함께한다. 점수와 승패보다는 아주 자질구레한 것들에 대한 베팅도 많아 발견하기 힘들고 증명하기도 어렵다.

가정을 해볼까?

노강완이 두 번째 타석에서 최소 3구까지 스윙을 안 하기로 했다면? 혹은 경기 초반도 아니고 후반도 아닌 적당한 순간 이뤄진 단 한 번의 루킹 삼진에 꽤 거액의 돈이 걸려있다면?

경기의 승패와는 크게 관련 없다고 간과하는 순간에 벌어지는 불법 거래의 규모는 누구도 모른다. 스포츠의 정정당담함이나 경쟁과는 무관하고 그 과정을 그냥 돈을 따먹기 위한 용도로 처박아 버리는 불법 베팅의 습성을 떠올려보면  터무니없는 상상력이 아니다.

과거 몇 번의 승부조작 사건이 불거지며 나를 포함한 야구팬들은 큰 실망감을 경험했고 본의 아니게 승부조작과 불법 베팅 방식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오늘 그 순간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 체육 선생인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나의 불편한 예감을 결론으로 이끄는 데는 5회 노강완의 타석 이후 사라진 뒤 돌아오지 않은 이석현과 그 빨간색 아이콘의 주인공도 일조하고 있다.

혼란한 심경을 뒤로하고 백미러로 딸을 본다. 고맙게도 오늘 얌전했던 딸은 곤히 잠든 상태로 끝까지 이쁜 짓만 하고 있다.



"아마 그때 누구 매니저로 갔었을 거예요. 연예인 매니저였나.. 암튼 연루된 사람들 이름값이 있다 보니 많이 가려져 있긴 했는데 해당됐었죠. 집행유예 받았을 거고요"

강석훈이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원정도박 사건 당시의 서인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매니저가 원정도박 걸릴 정도로 돈이 있나? 서인직이 매니지먼트 임원급이라도 됐던 거야?"라고 승환이 다시 묻는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 같이 간 멤버들이 돈 좀 있잖아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걔가 매니저 했던 연예인이 진유건설 모델을 했을 땐데 멤버였던 진유건설 아들이 좀 밀어주지 않았나 싶어요. 진유건설 아들은 환치기까지 엮여서 그때 실형은 젤 크게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봤자 얼마 안 나왔을 거 아냐?"

"그쵸 뭐. 그렇게 엮였어도 항소 거치면서 낮췄을 거고 집행유예까지 끌어내렸을 거니까. 실제로는 안 들어간 걸로 기억하는데.."

"서인직이 관해서 다른 건 뭐 아는 거 없어?"

"어차피 연예인 매니저였고 그 일 이후로 일 끊겼을 텐데 뭐 알려질 거 있나요? 저도 취재하다가 기사에 명단으로 넣으면서 확인한 수준이라 사진도 따로 없어요. 그나저나 그 친구 뭐 있어요?"

"그냥 최근에 무슨 사고 관련해서 조사하는 게 있는데 이름이 나와서 확인 좀 하느라고"

"에이~괜찮은 모찌(기사 제보) 있으면 같이해요. 눈치 보니까 뭐하나 제대로 문거 같은데"

"그런 수준은 아니고. 그나저나 지금은 어디 있어?"

"석 달 전에 '퀵클리(Quickly)'로 왔어요. 그냥 약속 잡고 밥 먹고 차 마시고 다니는 거죠 뭐"

"아이고 영전하셨네. 얼굴 본 지도 오래됐고 전화도 미안하니 내가 조만간 밥 한 번 살게"

"그러시죠. 기다리겠습니다"

승환이 영전이라고 표현한 것이 단순한 립 서비스는 아니다. 퀵클리는 경제지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있는 매체로 영향력과 기업들로부터의 광고수입이 상당하다. 기자들의 연봉 역시 동종업계에서 알아주는 편으로 이직 선호도가 높은 곳이다.

다만 회사원의 이직과 비슷하게 기자의 이직 역시 누군가 땡겨주거나 성과, 이를테면 특종이나 경력으로 칠 만한 기사들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요즘은 기사제목으로 클릭 유도 잘하는 것도 능력으로 치는 시대지만 어쨌든 체급 높은 매체로 이동을 하려면 한방 있는 기사들로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이 중요하다.

승환은 강석훈을 꽤 열심히 하던 기자로 기억한다.

매체에 들어올 때부터 경제부 위주로 시작했고 현장도는 걸 체질에 맞아했다. 경제부 쪽 기사를 쓰다 보면 아무래도 회사들이 내주는 보도자료를 그저 날로 사용하거나 다른 기사들을 우라까이(베껴쓰기)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강석훈은 그런 식으로 기사를 쓰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강석훈이 히트를 한 기사가 뭐가 있는지 떠올려 보려 했지만 당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긴 자기 기사 쓰고 밑에 기자들 기사 검수하기도 바쁜데 오랜만에 연락하는 후배 기자 기사를 아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이겠다는 결론으로 생각을 일단락시킨다.

승환은 다시 서인직에게로 꽂힌다. WL인베스트먼트의 서인직이 이 서인직이라면 야로(순우리말로 '흑막'을 의미)가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예감을 발전시키려면 실체를 봐야 하는데 그럼 얼굴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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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에서 집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가 가능하냐는 승환의 톡이 왔다. 직접 전화를 걸었다.

"한 선생님 아직 안 주무셨네? 몸은 좀 어때?"

승환은 통화를 할 때면 나를 한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응 몸은 별문제는 없어. 오늘 가을이 데리고 야구장에 갔다가 쫌아까 들어왔어"

"뜬금없이 야구장? 워리어스가 원정 왔나 보네?"

내가 워리어스 팬인 것도 승환은 알고 있다.

"어떻게 표가 생겨가지고 그렇게 됐어. 그나저나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 기자님"

"아 병원에서 부탁했던 WL인베스트먼트에 관해서 대충 알아봤어. 뭐 포털에서 검색해도 별거 안 나오듯이 그저 그런 회사인 줄 알았는데 역시 그저 그런 회사더라고.

소개상으로는 스포츠랑 엔터테인먼트 부문에 투자를 한다고 나와있지만 기업 활동이나 매출에 관해서 의미 있는 내용이 별로 없네. 생긴 지 3년 정도 밖에 안되기도 했고"

"역시 그렇구만"

"나간 김에 명함에 있는 회사 주소지로 가봤더니 문은 잠겨있고 사람 발길이 뜸한 것도 티가 나더라고. 관리실에 계신 분한테 여쭤봐도 사무실 구성원이나 내용에 대해서 잘 모르고"

"흠.. 그럼 별거 없는 거네?"

"그런데 잘하면 꼭 그런 건 아닐지도 몰라. 하나 조금 파보고 싶은 게 있거든. WL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서인직이라는 인물인데 여기에 접근해 보면 뭐가 좀 있지 않을까 해"

"서인직?"

"한 선생님도 한 5년 전쯤에 떠들썩했던 유명인들 원정도박 사건 기억하지?

그때 거기에 포함된 연예인의 매니저 일을 하던 서인직이라는 인물도 같이 걸려들어갔는데, 혹시 같은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는 중이야. 흔한 이름도 아니고"

"듣고 보니 만약에 그렇다면 진짜 뭔가 있을 법 할거 같은데..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냐?"

"뭐 계기야 단순했지만 궁금증에서 시작하고 알아보는 게 내 직업에서는 흔한 일이잖아. 개인적으로 흥미가 생기려고도 하고"

"그런데 어떻게 확인을 하지? 이석현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사무실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수도 없는 거잖아?"

"내가 일단 매니저 서인직 얼굴은 확인해놨어"

"오 그래?"

"이것저것 방법을 생각해 보다가 과거에 연예인이랑 매니저가 같이 나오는 프로그램에 한 번 출연을 했던 게 얻어걸리더라고. 그때 공개된 서인직 얼굴 캡처한 게 있어.

통화 끝나고 톡으로 보내줄게. 한 선생님도 얼굴 확인해 봐"

"그래 땡큐"

"그나저나 오랜만의 야구장은 어땠어? 워리어스가 이겼나?"

"분위기도 좋고 가을이도 잘 버텨줘서 좋았지. 워리어스가 승리하기도 했고. 그런데 좀 신기하달까 특이하달까.. 아니면 어이없다고 해야 하나. 야구장에서 이석현을 봤어"

"뭐라고? 이번에 사고 낸 이석현?"

"크.. 기자님도 신기하지? VIP석에 야구를 보러 왔더라고. 처음에는 몰랐다가 5회쯤 야구장에 있는 걸 발견했는데 혼자가 아니라 동행도 있었어. 그런데 6회 되기 전에 나가더라"

나는 간략하게 이석현의 목격담을 전하면서도 아이콘이나 나의 생각 등 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별 희한한 인연도 다 있네. 그놈 팔자도 좋구만. 그건 그렇고 아직 합의는 안 했지?"

"합의는 안 했지. 음주운전에 대한 깊은 빡침이 여전해서 합의를 해줄지 말지도 아직 결정 안 했어. 저쪽에서 연락 오기 전에 이선이랑 다시 얘기는 해봐야지"

"합의를 안 하면 이석현의 처벌이 가중되기야 하겠지만 몸 돌보는 거나 현실적 이득도 고려는 해봐. 얼마나 제시하는지 정도까지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

"그래 생각해 볼게"

"사진 보낼 테니까 확인해 보시고 편히 쉬셔"

통화를 마치고 바로 승환에게서 매니저 서인직이라는 사람의 사진이 왔다.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사진 속 서인직은 이석현과 야구장에 함께 왔던 빨간색 아이콘 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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